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사에의 초대 임진왜란 (문단 편집) == 이 다큐멘터리에서 알려진 사실 == * 일본군의 명목상 총사령관이 [[우키타 히데이에]]라는 점.[* 드라마, 영화, 위인전 등에는 항상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만 부각되는 까닭에 우키타 히데이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아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.] * [[신립]]이 [[선조(조선)|선조]]로부터 상방검을 하사 받고 뒤를 돌아설 때 투구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. 이는 전란 이후 [[유성룡]]의 [[징비록]]에도 언급된다. * 신립이 군대를 이끌고 탄금대로 갈 때 병사들이 몰래 '''[[군무이탈]]'''을 했다는 점. * [[탄금대 전투]]의 날씨가 비였다는 점. * 본디 [[일본]] [[센고쿠 시대|전국시대]]에서 [[다이묘]]는 끝까지 성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며 성이 함락되면 다이묘가 [[할복]]하는 게 원칙이지만 [[조선]]의 경우 [[선조(조선)|선조]] [[임금]]이 성을 버리고 도망쳐서 [[고니시 유키나가]]를 벙찌게 했다. *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'''천세(千歲)'''를 외쳤다는 점. 여기에 천세는 [[고종(조선)|고종]] 시대에 이르러 '''[[만세]](萬歲)'''로 바뀌어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. * [[사천 해전]]에서 왜군이 병사 일부를 '''조선인으로 위장시켰다'''는 점. 이를 [[이순신]]이 발견하고 "'''조선인이다! 조선인이 우리를 쏘고 있다!'''"고 크게 외친다. * [[하동군|하동]] 현감 준해가 양민들에게 식량을 풀고, 식량을 가지고 나가는 양민들을 '''활로 쏘아서 죽이고 목을 베어 왜군 수급으로 속여 장계를 올렸지만''' 하동에 왜군이 들어오지 않은 것을 알고 있던 김성일에 의해 발각되었다는 점. * 행주대첩이 버려진 토성에 목책을 설치하고 펼친 전투에 민간인 없이 전투 부대로만 치른 전투라는 점. * [[이순신]]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보직해임당한 이유는 사실 [[원균]]이 이순신을 모함한 것이 아니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자기 부하 요시라를 간첩으로 내세워 이순신을 옭아묶은 것이다. * 권율이 원균을 곤장친 것. * [[노량 해전]]에서 [[백병전]]이 벌어진 것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